[기고] 독립적인 초기 조건들의 조화…집단지성과 닮은 ‘앙상블 예측’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경향신문 2018. 11. 22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222119005&code=610100&s_code=am021

화가 모네는 ‘루앙 성당’을 여러 번 그렸다. 그것은 가장 뛰어난 그림을 고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성당을 각각 그려냈다. 루앙 성당의 참모습은 하나의 뛰어난 그림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각 그림의 차이에 따라 비로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날씨 예측모형은 예측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여러 다른 예측을 만들 수 있으므로 뛰어난 하나의 예측만으로는 날씨의 참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단 하나의 예측으로 확실함에 닿을 수 없다면, 여러 예측 간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차이를 발생시키는 가능성이 창의적인 영역으로 나가게 하는 선결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 예측의 무수한 가능성, 다시 말해 불확실성이 왜 일어나며 이것이 어떤 새로운 예측의 세계를 열 수 있을까?

날씨 예측모형은 지금까지 인류가 날씨에 관해 이해하고 있는 과학을 집대성한 체계이다. 이는 ‘날씨는 미분으로 표현되고 적분으로 예측된다’고 간결하게 기술할 수 있다. 예측모형은 어떻게 대기가 움직이고 열과 습기가 교환되는지를 표현하는 미분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분방정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변화하는 세상 만물을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정식을 시간에 따라 적분하면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

날씨 예측모형은 슈퍼컴퓨터에서 다음 과정으로 수행된다. 가장 먼저 전 세계에서 관측된 기상자료가 실시간으로 입력된다. 즉 실제 공간의 날씨가 관측을 통해 컴퓨터의 가상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관측자료는 시간적으로 불연속적이고 공간적으로 불균질하며 관측 장비에 따라 이질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상공간을 3차원 격자로 나누고 각 격자점에 관측자료를 연속적으로 일정하게 배치한다.

이를 초기 조건으로 모형에서 날씨를 예측한다. 이 결과는 날씨 정보로 제공되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흘러 예측이 현실로 되는 순간, 예측할 당시 안 보였던 것이 드러난다. 즉 관측을 통해 예측이 왜 틀렸는지를 알게 되며, 이를 기반으로 날씨 예측모형을 개선한다. 이처럼 날씨 예측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오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초기 조건을 만들 때, 여러 곳에서의 여러 관측이 모든 곳에서의 모든 관측이 아니라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여러 곳과 여러 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현상이 날씨에 영향을 주어 예측을 틀리게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성을 쏘아 올리고 레이더를 촘촘히 배치하는 등 관측망을 확대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없었던 날씨를 알아내지만, 다시 알 수 없는 날씨를 만나게 된다.

아무리 탐구해도 다 알아낼 수 없는 날씨의 무한한 실재는 관측이 정교해질수록 새로운 모호함을 드러내기에 우리는 결코 그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다. 이 순환고리로 예측 불확실성을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과학은 확실한 만큼 불확실하고, 기존 난제를 해결한 만큼 새로운 문제를 만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로렌스 교수가 간단한 날씨 예측모형으로 수행한 복잡계(카오스)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직관적으로 비슷한 초기 조건은 비슷한 경로를 따를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측이 초기 조건에 민감해 원인이 결과에 비례하지 않는다. 카오스 이론에서는 거의 완벽한 초기 조건이 거의 완벽한 예측을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날씨는 복잡계이므로 관측에 포함된 미세한 작은 오차가 예측 시간에 따라 지수함수적으로 증폭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과거 날씨에서 미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날씨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알려면, 오늘의 조건과 같은 예전 일기도를 찾아 과거 날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로렌스의 예측 연구에서 완전한 초기 조건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현재 날씨와 정확히 같은 과거 날씨를 찾을 수 없으므로 현재 날씨로는 미래 날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로써 우리는 예측하기 어려워서 예측하지 못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어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날씨 예측에서 카오스의 발견은 예측 방식의 다른 길을 열어 주었다. 카오스는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다. 기상학자들은 카오스 안에 있는 질서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나의 예측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모든 계산 역량을 쏟아붓는 대신, 여러 초기 조건으로 여러 예측 결과들을 산출한다. 이때 초기 조건은 단순히 무작위적인 변화가 아니라 관측 오차 내에서 작은 변화를 가해 만들어진다.

관측 오차는 자연법칙 안에서 나타나는 ‘우연’으로 작용한다. 각기 다른 초기 조건은 날씨를 지배하는 결정론적 방정식 계라는 특정한 구조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향해 간다. 그러기에 이 여러 예측은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정보를 가지게 된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예측 결과를 함께 분석하면 개별 예측보다 정확도가 높아진다.

이는 다윈의 친척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통계학자가 이미 1907년 확인한 사실이다. 영국 시골 장터에서 소 한 마리를 무대에 올려놓고 그 몸무게를 맞히는 퀴즈가 열렸다. 프랜시스 골턴이 지켜보던 날은 800명이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정확하게 소 무게를 맞힌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적어낸 소 무게의 평균을 내보니 거의 정확했다. 단 한 사람도 맞히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판단이 모이니까 정확한 무게를 맞힐 수 있는 ‘집단지성’이 작동한 것이다.

집단지성의 성공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집단이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즉 독립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어야 정확한 어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도 각자의 선거권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려면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독립적인 관계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도 <예언자>에서 어울림은 각자가 혼자여야 이루어진다고 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날씨 예측모형에서도 초기 조건들이 집단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예측 결과도 편향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집단의 예측이 하나의 예측보다 더 나은 점이 없게 된다. 불확실성을 예측의 근원적 속성으로 받아들이려면 서로 독립적인 초기 조건을 사용해야 한다.

서로 독립적인 초기 조건들로 여러 번 예측하는 기법을 ‘앙상블 예측’이라고 한다. 음악에서 앙상블이란 여러 명의 연주자에 의한 합주를 의미한다. 이때 같은 악기로 같은 음을 연주한다면 앙상블의 의미가 없다. 서로 독립적인 다양함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앙상블 예측 결과는 독립성과 함께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홀로 극단적이면 전체와 앙상블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개 예측의 차이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날씨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의 틀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즉 각각의 앙상블 예측은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터무니없는 날씨를 예측하지 않아야 하지만, 정확히 똑같은 날씨를 예측하지도 않아야 한다.

날씨 예측에서 모두 비슷하게 우수한 100개 결과를 내는 경우보다 성능이 좀 떨어진다 해도 다양한 100개의 앙상블 결과를 산출할 때 더 효과적이다.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우수한 100명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평범한 100명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수가 따르는 의견에 대해 다양한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소수의 존재가 어느 정도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앙상블 예측에서도 날씨에 따라 예측이 어느 정도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를 알려 준다. 예측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초기 조건의 정보가 지수함수적으로 빠르게 사라지지만, 날씨에 따라 정보를 잃어버리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앙상블 예측은 예측 간의 차이로 예측 가능성을 나타낼 수 있다. 각 예측 간의 차이가 작다면, 정확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각 예측 간의 차이가 크다면 예측 가능성이 작다. 또한 앙상블 예측에서 대기가 안정할 경우에는 불확실성이 작고, 불안정할 경우에는 그 반대로 나타난다. 즉 날씨 상황에 따라 얼마나 예측이 빗나가는지의 정도인 불확실도(신뢰도)를 산출할 수 있다. 이처럼 예측 불확실성의 숙명을 우연에 맡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알 수 없는 예측 불확실성’을 ‘계산 가능한 예측 불확실성’으로 바꾸어야 한다.

시인 이성복은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라고 했다. 빗나갈 수밖에 없는 예측이라면,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옳은 전략이다. 왜냐하면 설명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라면 거기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의 한계이지만, 예측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날씨 예측의 새로운 영역이기도 하다.

앙상블 예측에서 제공하는 신뢰도를 판단하여 시민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날씨에 민감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서는 예측 신뢰도를 판단하여 계획을 조정할 수 있다. 기업들의 경쟁우위는 보통 미미한 수익률로 결정된다. 정량화된 날씨 예측 신뢰도를 사용한다면 경쟁의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날씨 예측은 민주주의와는 무관한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날씨 예측도 시민과 기업이 스스로 예측에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예보관이 알려주는 날씨 예측이 확실할 수 없는 것을 확실해야 한다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근거로 비난받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확실성을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지고 더 숨 막히게 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도 “넌 내 거야!”라고 선언하는 순간부터 상대에 대한 떨림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멈춰버린다. 이처럼 불확실성을 줄인다고 확실함만을 추구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확실함은 현실의 복잡함과 모순을 놓치게 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지남철은 마구잡이로 떨지 않습니다. 남쪽이라는 구체적인 지향점이 있지요”라고 고려대 윤태웅 교수는 그의 책 <떨리는 게 정상이야>에 썼다. 날씨 예측도 불확실성으로 떨리는 게 정상이지만, 그 떨림이 마구잡이는 아니다. 하나의 결정론적 예측이 아니라 떨림 안에 담겨 있는 지향점을 찾아내는 앙상블 예측이 날씨 예측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