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책임한 그들의 근거 없는 믿음…그들보다 미래가 더 위험하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경향신문 2018. 12. 20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202053005&code=610102&s_code=am021

성경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소돔과 고모라’의 예언을 미리 들은 어느 한 가족이 거기로부터 탈출했다. 거기에 아쉬움이 남아 뒤돌아보면 안되는 탈출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마찬가지로 지구가 뜨겁게 되리라는 예측이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위험을 일으킨 지금까지의 성공에서 우리는 탈출해야 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산업 문명으로 인한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인 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오히려 자연이 인간을 통제하기도 한다. 즉 인류는 기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기후를 통제할 수는 없다. 기후가 위험을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과거 위험은 홍수, 가뭄, 지진, 화산, 전염병처럼 자연에서 발생하는 외부적인 것이었다. 이는 방재기술이나 보건위생 등의 결핍 때문에 생겼다. 선진사회에서는 그러한 결핍을 채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왔다. 반면에 기후변화, 환경오염, 오존층 파괴, 생태계 파괴, 스모그와 같은 현대 위험은 과거의 결핍을 메웠던 산업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수밖에 없는 위험이다. 이는 주로 결핍이 아닌, 더 잘살고자 하는 과잉 욕구로 발생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위험은 무지가 아니라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지식에서, 자연에 대한 불충분한 지배가 아니라 완전한 지배에서,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산업 시대에 확립된 규범과 객관적 체계에서 일어났다. 결국 현대 위험은 우리가 모르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류문명에서 비롯한다.

우리의 삶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만들었던 과학기술의 발달은 ‘위험사회’의 조건을 강화하였다. 즉 현대 과학기술은 문제를 풀어가는 도구임과 동시에 문제의 근원이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이는 문명의 기반인 과학기술이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인류가 최대한 밝혀낸 불완전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합리성은 한계가 있으므로 과학기술의 힘이 거대해질수록 그 부작용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진다.

또한 위험은 권력과 자원이 분배되는 위계와 질서에 따라 분배된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저소득 국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7%에 불과하다. 반면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80%나 배출한다. 기후변화의 원인자는 부유한 나라의 부유한 사람들이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난의 위험은 가난한 자들을 덮친다.

태풍, 폭풍, 홍수, 가뭄 등의 영향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나라나 집단이 있는 반면, 사회적 취약층은 자연 재난으로 인한 사회 질서의 붕괴를 고스란히 겪는다. 이익은 부국과 상류층에 축적되는 반면, 위험은 빈국과 하류층에 축적된다. 기후변화는 부자와 빈자, 중심과 변두리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후변화와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불평등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고 기후변화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즉 마르크스가 규명한 자본주의사회의 ‘생산 관계’가 위험사회에서는 ‘정의(正義·justice) 관계’가 된다. 기후변화의 생산자인가, 수익자인가, 피해자인가, 위험은 누가 규명하며 누가 책임지는가? 등에 관한 제도와 능력이 위험사회에서 정의 관계로 드러난다.

또 다른 한편 기후변화 위험의 상대성을 논하기에는 이미 그 심각성이 너무 커졌다. 위험이 커질수록, 아무리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일지라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적어진다. 위험을 피하는 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하지 않으며 국경과 계급을 넘어서 지구화의 경향을 보인다. 이제 위험은 시간과 공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우리를 위협한다.

울리히 벡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근대사회는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한 시대였지만, 현대는 위험 앞에 누구나 평등하게 노출된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사회의 핵심이었던 ‘재화의 분배’를 현대사회에서는 ‘위험의 분배’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우연히 발생하는 ‘재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원치 않았고 또 택하지도 않았다. 결국 아무도 위험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일례로 ‘경제성장을 하려면 온실가스와 오염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무책임성이 기후변화와 지구환경의 위험을 ‘외재화’한다.

이렇게 외재화된 위험은 책임 주체가 모호하므로 정부 정책결정자, 자본가, 노동자, 이 누구도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검증된 압도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이 무책임성이 기후변화를 ‘사실’이 아니라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믿음’에 근거한 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한다. 마크 트웨인은 일찍이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이 무책임한 믿음이 필연적으로 전 지구적 자멸을 향하게 할 것이다.

현재의 무책임성이 미래에도 연결되어 위험을 발생시킨다. 기후변화는 우리 세대가 이익을 누렸기 때문에 우리 세대에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미래 세대에는 지속해서 누적된 더 큰 위험을 일으킨다. 그러나 지금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위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결국 무책임성은 아무런 이익도 없이 위험만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미래 세대를 배제한 채 눈앞의 현실에만 몰두하게 한다.

위험사회에서는 해결이 문제를 낳고, 문제가 다시 해결을 낳는 순환고리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다. 불확실성으로 예측과 예방이 어려운 위험은 위험으로 인지하기도 어렵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점진적으로 축적되므로 단기적으로는 그 위험성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현대 위험은 ‘눈앞의 위험’이라기보다는 ‘직접 감지되지 않는 위험’이다. 직접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사회에 불안을 일으킨다.

울리히 벡은 근대사회의 변화 동력이 “나는 배고프다!”에서 시작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나는 두렵다!”라는 불안에 기반한다고 주장했다. 불안은 이념의 차이나 경제적 이익을 넘어 또 다른 차원에서 핵심적이고 강력한 사회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계급과 국가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기후변화의 위험은 전 지구적 공론과 연대의 장을 열게 한다. 18세기 말, 이마누엘 칸트는 자유롭고 이성적인 시민으로부터 세계주의가 확대되는 역사 과정을 예견했지만, 정작 세계시민으로서 함께 협력하도록 이끄는 동력은 세계 시민 의식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지구환경의 위험이다.

새로운 기원을 여는 이러한 사실 중 하나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보여준다. 기후변화는 인류 공동의 과제이지만, 선진국이 지금껏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위해 1997년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교토의정서에서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원칙에 따라 선진국에서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합의하였다. 그 후 중국이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가가 되고 개발도상국이 세계 배출량의 60%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는 2020년부터 예외 없이 인류 전체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것으로 다시 합의했다.

이 전환에 기여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지금 우리의 대응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보여준다. 미래 위험을 피하려고 지금 반응하고 행동한다면 스스로 반박하는 예언이 될 것이다. 이처럼 예측된 위험은 가능성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해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것’이 된다.

교토의정서 이후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혀 줄이지 않는 시나리오를 따라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위험이 분명하고 절박해도 왜 그 대응은 이처럼 지체되는가? 현대 위험은 인류문명의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에 대응하기가 더욱더 어렵다. 우리는 성공에 취해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위험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가 지금 생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류 전체가 풍족하게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왜 생산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더 사용하고 기후변화를 더 일으켜야 하는가?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온 가치를 다시 점검해야만 한다. 발전만을 추구하는 과소비 체계를 바꾸는 선택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선택이 아닌 시련을 겪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더 크게 더 빨리 발전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대기의 화학 조성 변화로 일어난 과학 문제이지만, 이 변화는 산업혁명에서 시작한 사회경제 체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자가 기후변화는 어떤가에 관한 ‘사실’의 문제라면 후자는 우리 사회가 어떠해야 한다는 ‘가치’의 문제이다. 위험은 과학기술로 만들어낸 복잡한 사회 시스템 자체에 내재해 있다. 그러므로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오염 문제처럼 그에 관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핵전쟁이 갱단 폭력과 차원이 다른 것처럼 기후변화는 지역적인 환경오염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후변화는 그 심각성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통해 현재의 생활방식과 산업구조를 바꿔내는 사회 변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인류라는 유충은 고치를 뚫고 나와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건만, 고치가 사라진다고 힘들어한다. 유충은 나비가 될 텐데 말이다. 지금 익숙한 우리 삶이 유일한 길도, 최선의 길도 아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와 상상의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기후변화의 위험은 인류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세상에 관한 사고방식과 정치 행위에 도전해야 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