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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칼럼] 갈수기에 겹치는 가뭄 - 변희룡 명예회장(부경대)
작성자 기상학회  
글정보 작성일 : 2017년 07월 25일 13:09 , 읽음 : 96

[과학에세이] 갈수기에 겹치는 가뭄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명예교수

국제신문 2017. 7. 24 게재
원문보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70725.22026004480

대한민국에는 매년 겨울과 봄 물이 부족한 특별한 기간이 있다. 이 시기의 물 부족이 심하면 그해 벼농사 외에도 보리 양파 마늘 등의 농사가 타격을 입곤 했다. 그 피해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정도다. 그런데도 그에 걸맞은 이름조차 없었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입춘 우수 경칩 등의 24절기로 세분화된 것은 주 나라 말기이니 3000년쯤 전이다. 근대에는 개화기 파종기 단풍계절 벚꽃계절 등의 이름도 생겼다. 이들은 기온의 연내변화 반응한 계절 구분이다.

비 오는 날이 많은 기간은 장마철로 구분되면서도 ‘물의 양’의 많고 적음에 반응한 계절 구분은 간과되었으니 강수일수나 강수량의 단순합산으로 안도한 때문이다. 피해는 비 오는 날의 수나 강수량이 아니라 물의 양에 좌우되니 등한시할 수 없다.

토목공학에서 먼저 갈수기란 용어를 사용하긴 했다. 하천의 연중 일별 수위 중에서 하위부터 10위의 수위를 갈수위라 하고, 그 이하인 날들을 갈수기라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겨울과 봄에는 마른 하천이 많아 이 구분은 계절의 실용성도 대중성도 없다. 기상학계는 관심을 하천 수위에서 ‘물의 양’으로 돌려 ‘유효수자원량이 CV값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연속된 기간’을 갈수기라고 다시 정의했다.

유효수자원량이 그 시각에 존재한다고 추산되는 물의 양이다. 직전 1년의 총강수량에서 유출이나 증발 등으로 소모된 양을 감하여 구한다. 강수 후 경과 시간이 길수록 유효수자원량은 많이 소모된다는 단순 논리만 적용하며, 지형과 식생 등에 따라 생기는 차이는 필요 시 관측치 통계로 보정한다. 이 유효수자원량이 평균보다 많거나 적은 날이 연속되면 연속된 날만큼 강수량의 합계 기간을 더 길게 잡아 다시 계산한다. CV값은 30년 동안 날짜별로 평균한 유효수자원량 365개의 값 중에 하위 25%에 해당한다.

이 유효수자원량이 강수량과 물 환경을 연결하는 실용적 매개변수로 등장하자 강수량의 단순합계로는 해결되지 않던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직접 관측하지 않고도 과거의 통계치 보정을 통해 토양수분을 측정할 수 있다. 빗방울이 떨어지자마자 하천과 댐의 몇 시간 후의 예상 수위가 계산되니 홍수의 조기경보도 가능해졌다. 물의 양은 강수량 합계가 아니라 강수량의 시간분포가 결정한다는 기초개념 그리고 가뭄이나 홍수는 강수량의 단순합계가 아니라, 물의 양이 적거나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기초개념이 더욱 분명해졌다.

대한민국의 평균 갈수기는 2월 9일부터 5월 11일까지다. 지역 차가 심해서 남해안은 1월 15일, 동해안은 3월 20일부터 시작된다. CV값도 지역 차가 심해 물이 많은 남해군은 가장 작은 의성군의 두 배이다. 여기서 두 지역의 특산물인 마늘의 맛 차이의 원인도, 의성 등 내륙에서 아열대 식물이 살기 어려운 원인도, 아예 갈수기가 없는 해도 있고 일년 내내 갈수기인 해가 있는 등의 연도별 차이도 모두 정량적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지역별 기후 차이나 연도별 기후변동도 정량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건기 우기가 아닌, 갈수기와 풍수기의 구분이 지구 전역에서 가능함이 발견되었고, 특히 이 구분이 농경에서 긴요하게 이용될 수 있다.

갈수기에 가뭄이 겹치면 피해는 더욱 커진다. 역사상 왕조의 흥망을 좌우한 가뭄은 대개 갈수기에 겹쳐서 발생한 가뭄이었다. 올해를 비롯하여 최근 6년 동안에도 대한민국에서는 갈수기에 가뭄이 겹친 재해가 3번이나 발생했다.

지금까지 가뭄은 강수량의 단순합계로 진단하는 것이 국내외 공통적 추세였다. 가뭄은 1개월의 강수량이 모자라서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을 돌발가뭄이라 한다. 그러나 수년의 강수량이 부족하여 발생하기도 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중국 은나라 탕왕 시절에 발생한 7년 가뭄은 유명하다. 한국의 실제 관측치에서도 3년 이상 연속된 강수량 부족은 흔히 발견된다. 이제 더는 갈수기나 가뭄을 6개월 강수량의 단순 합계로 가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왜 6개월인지가 설명되기 전까지는 6개월은 무의미하다. 과학은 기초개념이 합리적이라야 예측도 대비도 발전할 수 있다. 물 문제는 국가 흥망 또는 안보와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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